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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 안에서만 보내던 만으로 십일 년의 시간이 거짓말 같게도,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걷게 된 세계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더 넓어서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곳들 바라보는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도 마법이 놀랍다거나 시작하게 된 공부들에 생경함을 느끼게 될 리는 없었으니 역설적으로 시선을 붙잡는 것은 그와 다른 것들이라, 예를 들면 이 넓은 세계 속 운명처럼 만나게 된 몇십 명의 친구들, 그들이 지내온 시간들과 각기 다른 관계들, 접할 기회조차 없었던 '머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 다만 영영 가보지 않을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 밖의 사항이었으니 눈 앞에 자리한 존재들에 대하여 이유 없는 호감과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령, 깃펜보다는 연필을 자주 쓰는 어린 친구들. 가령, 부엉이 우편에 대해 별다른 호기심을 갖는 아이들. 가령, 호기심 자극하는 수많은 종류의 마법 잉크에 대한 이야기에 새삼스럽게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라든지.

  좁은 세상이 한순간에 넓어지고, 넓어진 세상에 낯선 얼굴들이 들어왔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같은 주제로 볼을 붉히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세상에 처음 발 내딛은 철 모르는 강아지처럼 이도 좋고 저도 좋아 마냥 순하고 수용적인 모습 보이는 사람이 되었건만 그래, 사람인 이상 그 시선은 마냥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덜 깬 얼굴을 마주하는 기숙사 친구들은 특별하지. 그러니 프림도 다른 색 망토들보다 노란 망토들 입은 사람들을 더 따르는 것 아니겠어. 우연일지 운명일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친구들은 또 어떻고?

 

  또, 또 말하자면.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같은 공간을 나누어 쓰며 고요한 밤 시간을 나누게 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더욱 더.


  단 하나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경험 그 자체라, 순진하여 어리기만 했던 열한 살 어린 아이가 순식간에 커 버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라 할 수도 없었다. 각기 다른 책임감과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마주하며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수많은 색들을 삼키고 소화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너희들의 자유로움이 부럽다. 때로는 너희들의 책임감이 존경스럽다.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높은 나무 가득한 숲에 둘러싸여 아늑한 그 저택은 여전히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사람 참 간사한 것이 한 번 겪은 일들을 쉽게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 이곳에 머무를 적 가족 이야기를 자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리워한 적 없었건만, 너른 저택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노란 불빛 피어오르던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름, 드물게 오고 가는 편지를 붙잡고 한참동안 답장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고양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버린 새벽, 스스로의 다리에 걷어차여 침대 저 아래 바닥에 떨어져버린 이불을 보며 문득 두 명 함께하던 방에서 함께 맞던 이른 아침의 일을 회상했다. 충만하게 가진 것에 만족하며 단 한 번도 부족함 느끼지 않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거짓말 같게도 유난히도 낯선 스스로의 모습은 만족하지 못 하고 감히 외로워하던 욕심쟁이. 뭐 하고 지내? 보고싶다. 쓰다가도 빳빳한 새 편지지 차곡차곡 접어 버린 것도 한두 번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우니 대고 드러낼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만, 하여간 참 낯설 정도로 새로운 자신의 이면이었다. 처음 필요한 것은 친구라는 존재, 밋밋하게 단편적인 단어였지만 그 속에서 구체화되어 명확한 모습을 그리게 된 이상 그것은 더이상 단편에 머무를 수가 없다. 말하자면 눈 앞에서 불꽃 일며 퍼져 가는 시간, 손에 쥘 수 있는 욕심의 형체를 한 물질이었으며, 단단하게 묶여 버린 이름 없는 사슬과도 같았다. 너의 생각보다도 특별했으며, 나의 생각보다도 중요했다.


  나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소유와도 같으니 그들의 말이라면 무엇 하나 거부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 부르기에는 분류가 다르며, 다만 친구라고 정의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변명과도 같은 이유는 붙일 필요 없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정답이니,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으니, 스스로의 마음에 한계와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다만, 한계라고 부를 것이 단 하나 있었다면.


"…응, 졸업할 때까지 내내 함께야."


  그 순간 문득,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 언제나 눈 앞에 있던 얄팍한 불투과 막과도 같은 것이 얼굴에 닿는 감각을 이제야 인식한 것이 전부였던 탓이다. 네가 문득 아래를 보아서 다행이다. 찰나, 낯설게도 굳어버린 얼굴을 빠르게 거두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경계는 이제껏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시해 온 현실이라, 보이지 않는 커튼을 걷어내듯 서둘러 네 손을 붙잡았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제서야 햇빛에 눈 녹아내리듯 어렴풋이 긴장한 표정을 풀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애써 우리 올해 함께 맞을 크리스마스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기숙사 휴게실에는 언제나와 같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할 테고, 한참 늦잠을 잔 이후에 일어나 준비한 선물들에 둘러싸여, 테이블에 주인 없이 놓아져 있는 달콤한 사탕이라도 하나씩 입에 물고…….




* 공미포 203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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