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58년의 여름, 사람 드나들 일 없어 지독할 정도로 고요했던 저택에 낯선 이들의 발자국이 참 많이도 찍혔다. 짙은 금발을 지닌 권위적인 얼굴의 중년 남성, 기묘한 안경을 쓴 키가 조막만한 노인, 막 학교를 졸업한 듯 여즉 얼굴에 어린 티가 남아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과, …하여간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참 많은 사람들.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묻는 말에 다정한 그의 어머니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하였다. 아버지를 도와줄 사람들이란다. 수많은 사람들의 주축은 아버지였는지 서로 오가는 줄도 모르던 사람들이 우연히 이 저택의 복도에서 만나게 되면, 그 얼굴에 화색을 띤 채 오랜만입니다. 인사를 하며 단단한 손으로 악수를 하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를 볼 때면 하나같이 묘한 표정을 그린 채 이리 말하기 마련이었다.


  네가 로보루스의 다음 후계자라고?


  그러면 어찌 대답할지 모르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어색하게 웃는 것이 전부인 열넷의 아이. 허나 사람들은 이러한 미숙함에 관심도 없어 잘 지내라 예의 상의 인사를 남기며 그의 아버지에게 가 버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아이는 언제나 훅 끼쳐오는 기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해묵은 양피지의 냄새, 짙은 잉크 냄새, 입에 머금으면 싸한 여운을 남길 법한 식물의 쓴 냄새, 증기 냄새, ……. 아, 떠올랐다. 이 기묘한 냄새는 낯설고도 익숙하여 이미 열네 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호그와트에서도 맡을 수 있는, 그 고성의 지하에 위치한 마법약 교실에 퀴퀴하게 가라앉은 냄새.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수많은 논문을 읽고 적으며 마법약 연구를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 이제는 거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익숙해진 여러 가지 종류의 허브들, 양은 냄비 안의 액체가 부글부글 끓는 모습 등.

  앞으로는 너도 친밀하게 지내야 할 사람들일테니, 소개를 해 주겠단다. 다정한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졌다. 금발의 남자에게 시선이 닿는다. 래쉬드 체스, 유명한 포션 마스터로 마법학 학회의 권위자란다. 이전에도 아버지와 몇 번의 연구를 같이 한 적 있지. 기묘한 안경을 쓴 노인을 바라본다. 미스 벨벳, 이상한 이름이지? 당연하게도 본명은 아니란다. 유감스럽게도 유리에게도 본명은 알려줄 수 없어, …저 분은 기자란다. 'The Uroborus' 신문사의 대표를 맡고 있지. 어린 무리의 학생들. 덤스트랭 마법 학교의 최근 졸업생들이구나. 미스터 체스를 통해 아버지의 실험을 도와주러 왔지. 

  무슨 실험을요?

  …설명하기 어려운데, 유리가 이해할 수 있겠니?

  음, 아니요. 괜찮아요. 아버지의 일이라면요.


  

  또다시, 1958년.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시기를 지나 약 한 달 후의 한여름. 쉴 새 없이 방문을 잇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드물게 금발의 중년 남성만이 얼굴을 비추던 때. 나쁜 습관이 들어 한밤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에 들지 못하고 눈만 끔벅이고 있으려니 너른 저택에 오가는 소리가 기묘하게도 귓가에 아른거려, 잠이 오지 않으니 몰래 우유라도 한 컵 마실까 싶어 유리디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요정을 시켜 우유를 부탁한다면 금방 어머니께 그 소식이 닿고 말 터였다. 직접 간다 하여도 마냥 들키지 않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때로는 밤 산책이 문득 끌리는 날도 있는 법이었다.

  계단을 두 번 내려가, 집요정의 손길만이 닿은 부엌에서 시원한 우유를 한 잔 따라 마시고, 어쩐지 어두운 복도가 스산하여 두 손을 맞잡아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지나쳤다. 저 너머에 가느다란 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서재였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와 어머니 두 명의 목소리가 아닌 세 명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 손님이라도 왔나? 이 시간에? 호기심 이기지 못 하고 아버지의 서재 가까이에 가면, 아, 그 사람이다. 아버지의 연구 동료라던 사람, 이름이 래쉬드 체스였나?


"발표를 한다면 하루 빨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인다만."


  중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라서,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러니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는 말이다. 느릿한 어조로 남자와 아버지의 대화가 이어졌다.


"심사는 끝났습니다. 학회의 사람들도 마냥 모른 체 할 수는 없겠지요."

"머글 태생 작자들이 문제다만, 그 쪽은 내가 어떻게든 손을 써 보도록 하지."

"아무렴요. 학술지 발표는 언제라고 그랬지요?"

"나흘 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잘 된 일입니다."

"멍청한 잡종 놈들. 그런 인간들을 함께 두어 보았자, 사회의 퇴보만을 불러 일으킬 뿐이지."

"호그와트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여론이 좋지 않더군."


  이어지는 목소리는 여성의 것으로, 아이에게 읊는 다정한 어조 그대로의 향을 지니고 있었다.


"경우 없는 일이에요. 우리 아이가 다쳤으면 어쩌려고 그런 무모한 짓을, …호그와트에는 유리와 같은 아이들도 수없이 많은데 말이에요."

"실수로라도 죽은 것이 마법사의 아이가 아니어 다행이지.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명목만으로써의 값싼 평등을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어."

"예, 압니다. 그러니 우리의 행동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체스."

"로보루스."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네를 지지하고 있네."

"감사합니다."


  카페트 위 의자 끄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온다. 급히 숨을 들이키고, 어두운 복도 사이로 몸을 숨기려는 순간.


"그것보다, 미스터. 유리를 조금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디아나, 당신도 참.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고."


  낯선 말들이 이어진다. 집안에 이어지는 병이, …아이의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일찍 사망했고, 근본적인 치료약이 없으며,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으로, …….


"―소중한 후계예요. 같은 핏줄끼리 혼인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지는 잘 알지만, 아시잖아요. 어느 누가 거짓으로 저급한 머글의 피를 이 핏줄에 섞을 지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하겠나요? 아이 아버지도 똑같은 병으로 죽었어요. 이런저런 대처는 다 해 보았지만, 당초 허약하기만한 몸일 뿐이라서. 로보루스의 병에 대하여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포션 레시피는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고민이랍니다. 디아나를 부디, 도와 주셨으면 해요. 사랑하는 아들이 아픈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눈물 섞인 여자의 말에 남자는 흔쾌히 긍정을 표하였다.


"로보루스와 연구를 더 해 보겠으니 걱정하지 말게. 소중한 피를 이은 아이가 아닌가."


  깜빡, 깜빡. 졸음 가득한 눈이 버겁게 움직인다. 색색 내쉬는 숨소리가 낯설 정도로 크게 들려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유리가 아픈 건 그 아이의 탓이 아니에요. 우리의 업보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저희는 그 아이를 사랑해요. 울음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쨍하게 귓가를 울린다. 문득, 더이상 이 곳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계단을 두 칸씩 밟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여전히 잠 오지 않는 눈을 크게 떠 본다. 



  그로부터 나흘 뒤, 애프터눈 티 타임을 즐기는 모자母子의 테이블에 두툼한 양피지 뭉치가 하나 올랐다. 여자는 퍽 기쁜 낯으로 두툼한 양피지 뭉치를 뒤집어가며 연신 자랑을 해 대었다. 이걸 보렴, 유리. 아버지께서 새로 쓰신 논문이란다. 장장 8년에 걸친 연구의 성과가 이 논문에 들어 있어.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글을 읊었다.


"제목, '마법사의 교육 시기와 고등 마법약 제조 사이의 상관관계 분석'."



 

마법사의 교육 시기와 고등 마법약 제조 사이의 상관관계 분석

저자 디아나 로보루스, 래쉬드 체스

발행처 영국마법약학회 1958.8


  머글 태생 마법사들의 늦은 교육 시기와 그들의 낮은 교육 성취도는 고등 마법약 제조에 있어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중략)…… 머글 태생 마법사들의 이른 마법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들의 근본적인 '마법 실력'의 불명확성에 근거를 두어, …… (중략)……  결과적으로 고등 마법약 제조에 있어 포션 메이커의 혈통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 공미포 2812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제.  (0) 2018.11.11
유영하다.  (0) 2018.10.30
다정의 이기심.  (0) 2018.10.25
완벽한 만족이란 허상과도 같아서.  (0) 2018.10.24
1학년 로그 백업.  (0) 2018.10.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