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버려 둬, 조금만 쉴게. "

두상

전신
(@cur1yhair1over님의 커미션입니다. 감사합니다.)

 눈 아래의 피부가 발그스레 달아올랐다. 어릴 적부터 존재치 않았던 생기 오른 흔적이 새삼스럽게 피어 오를 일은 없으니, 피로함이 만들어낸 발자국일 터였다. 창백한 색이 꼭 병자 같다. 그 단어가 마냥 틀린 말은 또 아닐 테다.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사람 좋은 낯을 하여 지내려 하건만 그 마음과는 달리 보여지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깊이 물어 보았자 답은 짧다. 그냥 조금 아팠어, 하고. 말쑥하니 키가 컸건만 평균보다 마른 탓에 낙낙한 망토의 품이 조금 남는다. 새로이 맞춘 망토에 더이상 흰색 고양이 털이 묻어 있지 않다는 것은 구태여 살펴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
  검은 머리카락은 때때로 심해의 어두운 남색 빛을 반사시켰다. 창백한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 사이, 두드러지게 시야 속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어릴 때와 다름없이 투명하게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제는 오른쪽 한 짝밖에 남지 않은 사파이어 귀걸이, 매달려 있는 가공된 보석의 빛은 도리어 죽어 눈에 띄지 않는다. 반지나 팔찌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고, 답답할 정도로 목 끝까지 단추 채운 셔츠 탓에 한 짝 남은 귀걸이 이외의 장신구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이름
유리디스 P. 로보루스 / Eurydice Primrose Roborus

성별

혈통
순수혈통

키/몸무게
177cm / 63kg

기숙사
후플푸프

지팡이
사과나무 / 유니콘의 털 / 10인치
: 올리밴더 지팡이 가게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재료들을 사용해 만든 지팡이지만, 미스터 올리밴더가 아닌 별개의 지팡이 제작자에게 의뢰를 해 만든 개인 맞춤형 지팡이. 검은 옻칠이 되어 있어 매끄럽고 흠 없이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지문이 잘 묻지 않는 재질로 몸체와 손잡이의 구분이 특별히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더 두꺼운 부분, 즉 손으로 잡는 부분의 지팡이 끝 부분에 둥글게 세공된 불투명한 하늘색 보석이 박혀 있다. 지팡이에 자리한 하늘색 보석은 터키석으로, 갓난아이일적 일찍이 사망한 친부가 남긴 유품들 중 하나라고 한다.

성격
[변하지 않을 천성] [다듬어진 선함] [고요한 불안] [침묵하는]

기타
  1. Roborus.
- 완벽한 순수혈통의 전승을 위해 가문 내 근친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리디스 로보루스의 양친도 또한 오누이 관계였으며, 그들의 양친이자 유리디스 로보루스의 조부모도 또한 오누이 관계였다.
- 그들의 극단적인 사상 외에도 가문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특출난 포션 제조 실력이다. 로보루스의 성씨를 온전히 이은 자들에게만 물려져 내려오는 마법약 제조법도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하며, 호그와트에서 사용되는 마법약 교재에 실려 있는 몇 마법약의 원 발명자들이 로보루스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할 정도. 이름난 포션 마스터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이 쌓은 부와 명예 중 7할 이상은 이로써 비롯되었다.
- 가문의 문장은 커다란 황금빛 장미를 가느다란 뱀 한 마리가 타고 올라가는 모양.
*
- 여전히 극렬할 정도의 순수혈통 우월주의 사상을 드러내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가주인 디아나 로보루스는 변동 없이 마법부의 위즌가모트에 소속된 의원이며, 최근의 흐름에 가세하여 순수혈통 우월주의 및 머글 혐오 사상들을 공적인 일들에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법 사회에서의 사회적 위치: 순수혈통 우월주의 사상을 표방하는 이들이 거센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최근, 공식적인 자리에서 로보루스 가문도 또한 순수혈통 우월주의 사상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전과 비교하여 적과 아군이 더더욱 뚜렷하게 나뉘어졌다.
- 1958년 여름, 디아나 로보루스는 영국 마법약 협회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에 따른 논란을 발발한 바 있다. 논문명 '마법사의 교육 시기와 고등 마법약 제조 사이의 상관관계 분석', 머글 태생 마법사들의 늦은 교육 시기와 그들의 낮은 교육 성취도는 고등 마법약 제조에 있어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그에 따른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머글 태생 마법사들의 이른 마법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들의 근본적인 '마법 실력'의 불명확성에 근거를 두어, …… (중략) …… 결과적으로 고등 마법약 제조에 있어 포션 메이커의 혈통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 신문사 'The Uroborus'
- 1943년 창설, 소량의 신문을 제작하여 유동 인구가 많은 다이애건 앨리와 녹턴 앨리 혹은 호그스미드 등에 비주기적으로 다량의 신문을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작은 사설 신문사. 정식 신문이라기보다는 '찌라시'에 가까운 내용들을 많이 실어 크게 주목받은 적 없이 길거리 노숙자들의 얄팍한 이불로써 사용된 것이 다수였다. 순수혈통 우월주의 및 머글 혐오 사상에 기반한 기사들로, 머글에 대한 불신 및 적대감을 조정하거나 머글본 마법사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순수혈통 마법사들의 우월함을 전파하는 등의 내용들이 많다.
- 1959년 여름, 로보루스 가문의 가주이자 위즌가모트 의원인 디아나 로보루스가 해당 신문사에 대한 공식적인 스폰 사실을 알렸으며 '그들의 주된 관심사에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과 함께 '사상에 기반하지 않는, 차별 없는 다양한 언론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선'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 디아나 로보루스가 신문사에 대한 공식적인 스폰 사실을 알린 것은 1959년이나 기자들의 정확한 이름, 신문사 사옥의 위치 등등 많은 것이 불명으로 밝혀진 'The Uroborus'가 어찌하여 약 16년동안 파산하지 않고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로보루스 가문의 이름-Roborus-, 신문사의 이름-Uroborus- 사이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 본래 해당 신문사는 회사의 창설부터 디아나 로보루스의 손 아래 있었던 것이며 스폰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들을 포함해 밝혀진 모든 사항들이 기실 디아나 로보루스의 일인극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 Eurydice Primrose Roborus.
- 12월 15일 생. 사수자리, 탄생화는 서향Winter Daphne. 모친인 솔 로보루스가 바라지 않았기에 형제는 없다. 외동 아들.
- 이아스 로보루스Eos Roborus(장남)과 솔 로보루스Sol Roborus(삼녀) 사이에서 태어난 로보루스 가문의 정식 후계자. 유리디스의 나이가 두 살이 채 되지 않았을 적 친부인 이아스 로보루스가 지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그 자리를 당시 차기 가주 후보였던 디아나 로보루스Diana Roborus(차남)이 물려받았다. 친부가 죽은 이후 그 자리를 디아나 로보루스가 모두 대체하고 있다. 즉, 현재 로보루스 가족의 구성원은 디아나 로보루스(父), 솔 로보루스(母), 유리디스 로보루스(子)로 총 세 명이다.
*
- 지난 학년들에 비해 부모님의 이야기 하는 것을 그닥 내켜 하지는 않는다. 부모님에게서의 편지는 주기적으로 오고 있으나, 유리디스 본인이 답장하는 빈도가 줄었다.
- 6학년 방학 중, 어떠한 연락에도 답장할 수 없어 방학 내내 모든 이들과의 연락이 단절되었다. 여느 방학들과 다름없이 창을 통해 편지가 도착하였으나 몸 상태가 지나치게 좋지 않아 답장이 불가능했으며 방학 끝무렵 조금 회복된 이후부터는 이러한 상태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답장 보내지 않기를 선택했다.
- 6학년 방학 이후로부터, 앓고 있던 호흡기 질환의 강도가 더 강해졌다. 창백한 낯이 숨겨지지 않는다. 수면 중에도 잔기침을 할 정도. 집에서 보내 주었다는 약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
- 어머니께 선물로 받았다던 사파이어 귀걸이는 오른쪽 귀에만. 나머지 한쪽 귀걸이의 행방을 물으면 짧게 대답한다. "잃어버렸어."
- 머글 혐오, 순수혈통 우월주의 등의 얘기에는 일절 첨언하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싶을 정도로 입을 닫는다.
7학년 직전, 엘리엇 루시페르 디그니타스와의 약혼이 파기되었다. 약혼 성사 때와 동일하게 파기에도 또한 유리디스의 의견은 개입되지 않았으며, 아버지에게 약혼 파기 소식을 전해들은 이후 당사자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은 것이 전부. 직후 덤스트랭 마법 학교에 재학 중인 얼굴 모를 먼 친척과의 결혼이 예정되었다. 

  3. Et cetera. 
- 애칭은 '유리'.
- 3학년 시절 이른 변성기를 거친 바 있다. 현재, 거칠지 않고 조금 낮은 듯 차분한 목소리가 안정적이다.
*
- 5학년 표준 마법사 시험 시 패스한 과목들은 다음과 같다. 마법약 (O), 변신술 (O), 마법 (A), 신비한 동물 돌보기 (E), 고대 룬문자 (A), 약초학 (E), 어둠의 마법 방어술 (A). 고난도 마법사 시험을 대비하여 듣고 있는 과목은 마법약, 변신술, 약초학.
- 마냥 무던한 낯으로 웃고 다니던 과거와는 달리 그 얼굴에 미소가 서리는 횟수가 조금 줄었다. 스스로는 예전과 다름없이 지내려고 노력하나, 그러기 위한 기력이 다소 부족한 듯 싶다.
-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여전히 친절하고자 하며, 남을 도와주고 싶어 하나 자신의 손 닿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일에만 손을 뻗고, 다른 일들은 보지 않으려 한다.
- 입이 짧다. 예전보다도 먹는 양이 더 줄었다. 키에 비해 비교적 마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많이 먹는 것을 버거워한다.
- 6학년 방학 이후로부터, 고양이 '프림'은 더이상 호그와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유리디스의 망토에도 흰 고양이 털이 묻어나는 일이 더는 없다. 고양이의 행방을 묻는 이가 있다면 망설이다 웃으며 대답한다. 죽었어, 하고.
- N.E.W.T.를 치러야 할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장래에 있어 그 성적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와 별개로 공부하는 도중 넋 놓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 잠이 길어졌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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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 안에서만 보내던 만으로 십일 년의 시간이 거짓말 같게도,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걷게 된 세계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더 넓어서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곳들 바라보는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도 마법이 놀랍다거나 시작하게 된 공부들에 생경함을 느끼게 될 리는 없었으니 역설적으로 시선을 붙잡는 것은 그와 다른 것들이라, 예를 들면 이 넓은 세계 속 운명처럼 만나게 된 몇십 명의 친구들, 그들이 지내온 시간들과 각기 다른 관계들, 접할 기회조차 없었던 '머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 다만 영영 가보지 않을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 밖의 사항이었으니 눈 앞에 자리한 존재들에 대하여 이유 없는 호감과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령, 깃펜보다는 연필을 자주 쓰는 어린 친구들. 가령, 부엉이 우편에 대해 별다른 호기심을 갖는 아이들. 가령, 호기심 자극하는 수많은 종류의 마법 잉크에 대한 이야기에 새삼스럽게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라든지.

  좁은 세상이 한순간에 넓어지고, 넓어진 세상에 낯선 얼굴들이 들어왔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같은 주제로 볼을 붉히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세상에 처음 발 내딛은 철 모르는 강아지처럼 이도 좋고 저도 좋아 마냥 순하고 수용적인 모습 보이는 사람이 되었건만 그래, 사람인 이상 그 시선은 마냥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덜 깬 얼굴을 마주하는 기숙사 친구들은 특별하지. 그러니 프림도 다른 색 망토들보다 노란 망토들 입은 사람들을 더 따르는 것 아니겠어. 우연일지 운명일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친구들은 또 어떻고?

 

  또, 또 말하자면.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같은 공간을 나누어 쓰며 고요한 밤 시간을 나누게 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더욱 더.


  단 하나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경험 그 자체라, 순진하여 어리기만 했던 열한 살 어린 아이가 순식간에 커 버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라 할 수도 없었다. 각기 다른 책임감과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마주하며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수많은 색들을 삼키고 소화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너희들의 자유로움이 부럽다. 때로는 너희들의 책임감이 존경스럽다.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높은 나무 가득한 숲에 둘러싸여 아늑한 그 저택은 여전히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사람 참 간사한 것이 한 번 겪은 일들을 쉽게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 이곳에 머무를 적 가족 이야기를 자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리워한 적 없었건만, 너른 저택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노란 불빛 피어오르던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름, 드물게 오고 가는 편지를 붙잡고 한참동안 답장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고양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버린 새벽, 스스로의 다리에 걷어차여 침대 저 아래 바닥에 떨어져버린 이불을 보며 문득 두 명 함께하던 방에서 함께 맞던 이른 아침의 일을 회상했다. 충만하게 가진 것에 만족하며 단 한 번도 부족함 느끼지 않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거짓말 같게도 유난히도 낯선 스스로의 모습은 만족하지 못 하고 감히 외로워하던 욕심쟁이. 뭐 하고 지내? 보고싶다. 쓰다가도 빳빳한 새 편지지 차곡차곡 접어 버린 것도 한두 번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우니 대고 드러낼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만, 하여간 참 낯설 정도로 새로운 자신의 이면이었다. 처음 필요한 것은 친구라는 존재, 밋밋하게 단편적인 단어였지만 그 속에서 구체화되어 명확한 모습을 그리게 된 이상 그것은 더이상 단편에 머무를 수가 없다. 말하자면 눈 앞에서 불꽃 일며 퍼져 가는 시간, 손에 쥘 수 있는 욕심의 형체를 한 물질이었으며, 단단하게 묶여 버린 이름 없는 사슬과도 같았다. 너의 생각보다도 특별했으며, 나의 생각보다도 중요했다.


  나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소유와도 같으니 그들의 말이라면 무엇 하나 거부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 부르기에는 분류가 다르며, 다만 친구라고 정의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변명과도 같은 이유는 붙일 필요 없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정답이니,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으니, 스스로의 마음에 한계와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다만, 한계라고 부를 것이 단 하나 있었다면.


"…응, 졸업할 때까지 내내 함께야."


  그 순간 문득,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 언제나 눈 앞에 있던 얄팍한 불투과 막과도 같은 것이 얼굴에 닿는 감각을 이제야 인식한 것이 전부였던 탓이다. 네가 문득 아래를 보아서 다행이다. 찰나, 낯설게도 굳어버린 얼굴을 빠르게 거두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경계는 이제껏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시해 온 현실이라, 보이지 않는 커튼을 걷어내듯 서둘러 네 손을 붙잡았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제서야 햇빛에 눈 녹아내리듯 어렴풋이 긴장한 표정을 풀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애써 우리 올해 함께 맞을 크리스마스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기숙사 휴게실에는 언제나와 같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할 테고, 한참 늦잠을 잔 이후에 일어나 준비한 선물들에 둘러싸여, 테이블에 주인 없이 놓아져 있는 달콤한 사탕이라도 하나씩 입에 물고…….




* 공미포 203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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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두툼한 이불을 턱 아래까지 당겨와 덮는다. 방은 어둡고, 주변은 고요하고. 그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몸살과 병증에 대처하는 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머리 아프게 눈을 찌르는 불을 모조리 꺼 버리고, 폭신한 이불을 덮고, 조금은 날카로운 숨소리에 집중한 채 잠에 빠져들기만을 기다린다. 그 숨소리보다도 고요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야 심리적으로 안정이 될 터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조금 이른 저녁, 다른 이와 함께 쓰는 방에는 그 혼자 뿐이었기에 홀로 쓰기에는 조금 넓은 방 비어 있는 공간이 이유 없이 눈에 밟혔다.

  그러니 평소처럼 잠에 금방 빠져들 수 없었으며, 따뜻한 털뭉치 품에 안고 안정을 취해보려 하여도 고양이 프림은 기운 차게 저녁 산책 중인 터라 결국 이 넓은 방에는 혼자 뿐. 먼지 굴러다니는 듯 거친 숨소리 몇 번 이어지더니 마른 기침을 네 번 이어 뱉는다. 잠에 빠져들지 못 하여 머릿속을 기어다니는 것은 쓸데없는 사념 뿐이라 청색 빛 어둠 감도는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생각들에 쉽게도 몸을 맡긴다.


  좋아하는 스포츠도 직접 못 해, 이런저런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몸 타고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원망을 해 본 적은 없었으니 다만 때때로 의문이 드는 것은 낫지 않을 병을 앓다 결국 일찍 단명하고 말았다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 어머니는 평균적으로 건강하여 발갛게 달아오른 젊은 뺨이 언제나 사랑스러웠으니, 자신의 체질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었다 가정한다면 그것은 결국 생물학적 아버지에게서 기인한 요소일 터였다. 두 살, 세 살? 기억도 나지 않던 어린 시절 보내버린 아버지의 얼굴은 학생 시절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으니 그마저도 자기 자신의 기억이라 확신할 수 없다. 아버지를 '알고' 있다고 확언하여 말할 수는 없었건만, 이 형체 모를 그리움은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아버지를 그리워해도 되는지,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감히 말해도 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의문이 들 뿐이다.

  사랑과 관심의 시작은 작은 궁금증 피어오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 적어도 그 시작만큼은 옳을 터였다. 아버지, 당신도 이런 불편하고 거슬리는 병을 앓았는지. 입 열지 않은 채 아픔에 대한 말들은 속으로 삭혀 홀로 참는 것을 선택하였으나 그것도 또한 언제나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버지 당신이 앓아 죽기까지 한 병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당신을 단 한 번도 기억하지 못 한 내가, 당신의 병을 닮아갈 것을 알고 있었는지. 만약 당신의 병이 나보다 심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당신은 그 고통을 어떻게 참고 감내했는지.


  …고작 이런 단편적인 의문들,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배려가 부족하다. 건조해 마른 눈꺼풀을 끔벅이며 그를 사랑한다는 근거를 감히 찾으려 했던 자신을 질책한다. 하지만 이 형체 없는 그리움을 끝내기 위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주 먼 미래 죽음이라는 영원이 찾아온 이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기억조차 못 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가지지 못 한 하나를 욕심내는 자신이, 그 얼마나 오만하고도 이기적인 사람인지. …….

  끝없이 꼬리를 물어가는 사념을 또다른 기침 소리가 멈추었다. 정자세로 누워 있던 몸을 모로 돌리고 웅크려 다리를 모아 잡는다. 청색 사념은 스스로를 갉아 먹을 뿐이다.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잠을 자자, 잠을 자자. 꿈도 없는 편안한 잠을. 죽은 것처럼 잠에 빠져들면, 어쩌면. 어쩌면, …꿈에서라도. 



* 공미포 126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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